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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현대자동차 창립 이야기

by 록펠러차일드 2022.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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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현재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입니다. 이번에는 국내 최고의 자동차 회사인 현대자동차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여태까지 해외 자동차 회사만 언급하였는데 이미 글로벌 회사인 현대자동차이니만큼 언급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최근 소식이야 많이들 아실 테니 이번 시간에는 현대자동차의 창립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현대자동차 창립 이야기


일제 강점기 시절 아산 정주영이 1940년에 쌀가게 '경일 상회' 주인이던 시절에 1940년 3월에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정비공장을 인수하였습니다. 경기도 경성부 아현정(현재 서울 마포구 아현동)이라는 곳에서 운영을 하였다고 합니다. 영문으로는 Art service였습니다.
그 당시 정주영은 빠르게 그리고 완벽하게 수리하고 수리비는 많이 받는 방식으로 사업 성공의 토대를 닦았습니다. 1940년에서 1942년 그 당시 조선에서는 자동차라는 것은 극소수의 부유층들이나 가질 수 있고 탈 수 있는 매우 값비싼 사치품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간단한 수리임에도 불구하고 수리 날짜를 늘려서 공임비를 더 받아내거나 일부러 부실한 수리를 하여서 정비소에 다시 방문하게 하려는 관행이 매우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주영은 '자동차가 고장이 나면 차 주인이 발이 묶이기 때문에 힘들어한다. 그래서 빨리 차를 고쳐 주는 것이 고객을 위한 길이다'라는 모토로 수리일은 그 어떤 큰 고장이어도 무조건 3일 이내에 다시 고장이 나지 않도록 완벽하게 수리한다는 방침을 내걸었습니다. 그 대신 수리비용은 다른 공장에 비하여 다소 비쌌는데 가격은 3배에서 5배를 받았습니다.
자정 시간까지 작업장에 머무르면서 고객들의 차를 매우 빠르게 수리하였습니다. 이렇게 속도는 빠르면서 작업 내용은 정확하고 그리고 납기일은 준수하는 철학이 있었기에 경영은 제법 순조로웠고 수익은 많이 났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공장이 화재로 불에 타서 없어지고 전쟁까지 발생하자 사업이 무척 어려워졌습니다. 결국에 일제는 기업의 통제 정책인 ‘기업 정비령’을 실시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주영이 소유하고 있던 아도서비스가 종로 5가에 있는 '일진 공작회'로 강제로 흡수되어 합병되었습니다. 정주영은 하는 수 없이 자동차 수리업을 그만두게 됩니다. 그 후에 아도서비스를 매도한 돈으로 트럭을 구입해서 석탄 운반업을 하게 됩니다. 그 시기에 아도서비스 직원도 징병이 되기도 하였는데 정주영은 당시 나이가 많아서 징병 대상자가 아닌 징용 대상자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석탄 운반업을 하면서 군수산업 종사자로 분류가 되어서 징용이 면제되었다고 합니다. 해방 이후에 서울 중구 초동의 적산 대지 등을 불하받아서 1946년에 우리가 아는 현대가 등장하는데 현대자동차공업사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합니다. 설립이 막 되었을 때는 미군 병기창에서 하청을 받는 게 주된 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갈수록 수요가 늘어났고 이 회사를 현대토건사가 흡수하게 되면서 현대건설로 바뀌게 됩니다.
대부분 현대의 초석을 현대건설로 많이 알고 있지만 현대의 초석은 다름 아닌 자동차입니다. 쌀가게 이후 아도서비스를 시작한 것만 봐도 현대자동차는 모름지기 현대의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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