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에는 국산차처럼 친숙하지만 프랑스의 대표적인 브랜드인 르노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르노 삼성이라는 브랜드로 익숙해진 르노입니다. 그런데 이런 르노가 나치와 무슨 연관이 있었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지금부터 제2차 세계대전 시절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르노와 나치의 이야기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고 현재 이름은 불로뉴 비양쿠르 그 당시 이름으로는 비양쿠르라는 곳에 르노 공장도 나치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그리하여 독일군을 위해서 군수물자를 생산하게 됩니다. 그 당시 나치는 르노에게 탱크의 생산을 요구하였지만 당시 르노를 경영하던 루이 르노는 이를 거절하였고 그 대신 고용 유지를 위해서 트럭 등의 생산을 하였습니다. 탱크는 아니지만 결국에 어찌 되었든 간에 나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그리하여 레지스탕스에게 제대로 찍히게 되고 연합군에게 크게 혼이 나게 됩니다. 전해진 바로는 당시에 르노 비양쿠르 공장에 쏟아부은 폭격량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제2차 세계대전 최고량이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이후에 공장을 복구하긴 하였으나 1943년 4월 그리고 1943년 9월 이렇게 미군에게 2번이나 공격을 당하게 됩니다.
1944년 프랑스가 해방을 하고 루이 르노는 나치 협력자로서 체포당하게 되어 수감되었습니다. 이후에 정신병원으로 이송되는데 그 뒤로부터 병세가 악화되게 되면서 결국에는 수감된 지 4주 만에 사망하게 됩니다. 사망의 원인은 아직도 불분명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요독증으로 되어 있습니다. 수감 당시 이야기로는 학대를 당했다는 말도 들립니다.
루이 르노가 나치에 협력을 하였기에 르노 공장의 노동자들이 독일로 끌려가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도 들리 기는 하나 결과적으론 루이 르노가 나치에 협력한 것이기에 지금까지도 루시 르노의 대한 평가는 엇갈리는 편입니다. 르노 회사에서조차도 거기에 대한 답변을 거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루이 르노의 유족들은 2011년에 그의 명예회복을 법원에 요청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편 프랑스의 또 다른 브랜드인 푸조를 이야기하자면 나치에 대항하여 공장을 스스로 폭파하는 일도 벌였고 시트로엥이라는 회사는 페르디난트 포르셰뿐만 아니라 그 어떤 독일 기술자와도 중개자를 통해서가 아니라면 일체 접촉을 거부하였고 그나마 요청을 받은 트럭 생산도 생산속도를 최대한 느리게 하기도 하고 다양한 태업 행위를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게슈타포가 '제국의 적'으로 블랙리스트에까지 올렸을 정도입니다. 푸조 또한 태업은 기본이었고 영국의 첩보조직에게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정보의 대가로 자금을 받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독일군의 V1 로켓의 동체 제작을 맡게 되었는데 거기에 필요한 설계도를 연합국에 넘겨버리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사례들에 비하면 르노는 비교했을 때 협조적이었기에 나치의 부역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일부 사람들이 말하기를 르노는 매국노 회사이고 푸조는 애국자 회사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르노-닛싼-미쓰비시 얼라이언스로 세 회사가 전략적인 제휴 관계인데 나열한 회사들 중 닛싼과 미쓰비시가 포함되어 대한민국에서도 그리 좋은 이미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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